시편 63편 1-11절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9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10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11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오늘 본문 시편의 표제에는 “유다 광야에 있을 때”입니다. 그리고 11절에서 스스로를 “왕”이라고 지칭한 것을 보면 다윗이 셋째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어 유다 광야에서 방황할 때에 쓴 시편이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내용적으로는 비록 환경은 메마르고 척박한 환경이지만 찬양하고 즐거워한다는 말과 함께 밝은 모습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인이 주님을 대단히 사랑하여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시인은 “내 영혼”이라는 주어를 세 차례나 사용하면서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는 나머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기 ‘영혼’이라고 쓰인 ‘네페쉬נֶפֶשׁ’라는 단어는 인간의 지, 정, 의의 모든 욕구의 중심지로서 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가리킵니다. 사람의 중심을 가리키기에 그냥 인간으로 번역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한다’는 것은 내 심령, 내 삶 전체를 가지고 주를 갈망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여기 ‘간절히 찾다’, ‘갈망하다’, ‘앙모하다’는 말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를 사모하고 사랑하여 간절히 찾고 갈망하고 앙모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다윗은 나의 영혼은 간절히 주를 갈망하면서 살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1절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다윗은 광야, 즉 마른 땅, 물이 없어 곤비하고 황폐한 땅으로 정말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으며 삶을 영위하기도 힘든 환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마치 광야에서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시42:1-2). 여기 ‘간절히 찾다’, ‘갈망하다’, ‘앙모하다’는 단어들이 전부 강한 표현들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보고 싶은지 간절히 찾아 헤매고 갈급해하고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만이 나에게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절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광야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소에서도 주님을 사모하여 바라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소(코데쉬קֹדֶשׁ)는 하나님이 임재한 장소로서 그의 영광이 있는 곳입니다(왕상8:10-11, 대하5:13-14). 여기 ‘바라보았나이다’(하자חָזָה)는 단어는 환상이나 계시 등 영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을 가리킵니다(욥 15:17; 19:26, 애 2:14).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이 있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사모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하나님을 사모하며 바라보는 이유가 무엇이라 고백하고 있습니까?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하나님을 갈망한 것은 그의 권능과 영광을 보고, 깨닫고, 경험하기를 소원하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란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서 나타나는 구원하심, 은혜주심, 능력이 나타나심, 죄인을 변화시키는 역사,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등 영적인 은총과 역사를 가리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변화하였듯이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의 역사와 능력을 경험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다윗의 고백처럼 환경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갈망하고 사모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과 같이 위대한 역사는 없는 것입니다.
2. 다윗은 나의 영혼은 주 안에서 만족스러워 하면서 살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5절에는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골수’는 최고의 음식을, 그리고 ‘기름진 것’은 특별히 맛이 있는 것을 상징합니다. 음식을 먹는 사람이 최고의 음식으로 만족해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누리게 되는 영적 만족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맛있는 음식으로 배불러 만족하듯이, 목이 말라 갈증을 느끼던 사람이 시원한 물을 마시므로 만족하듯이 오늘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갈망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만족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한 인생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3절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다윗은 영혼이 만족하는 것은 생명보다 주의 인자하심이 더 낫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생명’(하이חַי)이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것을 넘어 이 세상의 삶, 즉 세상에서 누리는 부귀와 영화, 행복을 누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맛보는 부귀영화, 쾌락과 만족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하심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무가치하고 허무한 것들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이 너무나 귀하고 존귀하여 과거에 누렸던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던 것입니다(빌3:8).
6절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다윗은 침상에서도 밤이 맞도록 주를 기억하고 새벽에도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에 세상에는 절대 없는 참된 만족이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시시각각 간절한 마음으로 찾고 갈망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도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고, 잠을 이룰 수 없는 깊은 밤에도 주를 깊이 생각하고 묵상했던 것입니다. 그 시간들을 통해서 주님과 깊은 영적 교제와 함께 그 은혜에 젖어드는 것입니다. 어찌 그 은혜에 만족하여 찬송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목숨을 다해 손을 들고 주님을 찬양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4절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주님의 은혜에 만족함을 얻는 사람은 그 입에서 절로 찬양이 흘러나오는 법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아니 목숨이 붙어있는 시간까지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주 안에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위대하심과 은혜로우심을 두 손 들고 찬양하며 기뻐할 것입니다.
3. 다윗은 나의 영혼은 주를 가까이 따르며 살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8절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여기 ‘따르니’(다바크דָּבַק)는 단어는 ‘착 달라붙다, 추종하다, 찰싹 들러붙다’는 뜻으로 자기 인생은 주님의 뒤를 바싹 따라다니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에게 있어서 주님의 뒤를 바싹 따르는 생활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는 생활을 해야 그의 사상, 그의 목적, 그의 인격, 그의 행실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고 더욱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7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전쟁에서 위기에 몰렸을 때에, 삶의 곤고한 처지에 놓일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원하고 돕는 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십니다. 세상 군대의 도움은 헛되지만 하나님의 도움은 참되십니다(사30:7, 31:3). 그러므로 주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안전을 보장하고 승리할 수 있는 길입니다(대하14:11, 사41:10, 13-14).
8절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여기 ‘오른손으로 붙든다’는 것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가시는 그 능력 가운데 행할 수 있도록 붙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붙들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도록사용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페르샤의 고레스를 붙들고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하시고 승승장구하여 위대한 업적을 이루게 만드시는 것처럼(사42:1) 그를 가까이하는 사람들을 붙들어 용사의 칼처럼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슥9:13, 참조 사41:13-14).
9-11절
9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10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11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하나님은 원수들 앞에서 역전의 승리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붙들어 사용해 주시므로 원수를 이기어 승리를 쟁취하게 될 것입니다. 대적자들은 패배할 것이고, 땅 깊은 곳으로 내려갈 것이고, 칼의 세력에 넘겨지게 될 것입니다. 마치 원수들은 하나님이 붙들어 사용하는 자 앞에서 지푸라기처럼 될 것이며 발바닥 밑의 재와 같이 될 것입니다(말4:1, 3).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곁에서 사람들이 다 떠난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홀로 외로운 가운데 방황하게 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고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주시는 은혜로 만족하며 살겠다고 다짐하십시오. 무엇보다 하나님만이 나의 돕는 자이심을 깨닫고 가까이 하십시오. 꽉 붙들고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구원해 주실 것이며 붙들어 위대하게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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