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장 9-14절]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EBS에서 방영한 ‘0.1%의 비밀’이라는 다큐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전국모의고사 전국석차가 0.1%안에 들어가는 800명의 학생들과 평범한 학생들 700명을 비교하면서 도대체 두 그룹 간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0.1%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뭐가 다른지 알아보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제작 당시에 제작진들에게 큰 고민을 안겨주는 부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상위 0.1%에 속하는 학생들의 공통된 특징을 조사해보려고 했는데, 많은 학생들이 IQ도 크게 높지 않고, 부모의 경제력이나 학력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래서 고민 중 문득 '메타인지metacognition : 자신의 인지과정에 대해 생각하여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며 자신의 학습과정을 조절할 줄 아는 지능과 관련된 인식'에 대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했는데 0.1%의 학생과 평범한 학생들 사이에 큰 차이점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0.1%의 학생들은 평범한 학생들에 비해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각하는 능력이 월등히 우수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서도 비교적 정확히 알고 있었고, 따라서 자신에게 맞는 해결책 또한 마련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메타인지' 능력이 학습능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프로그램이 마칩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는 '메타인지'가 꼭 학습능력만이 아니라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된 신앙생활을 하기 굉장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얼마나 주님을 믿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주님 앞에서 겸손한가?’ ‘주님 앞에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하는 질문 앞에서 얼마나 올바르게 대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자신의 영적생활과,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구원에 있어서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사람이 변화되려면, 먼저 주관적인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실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와 변화의 시작입니다. 눈이 열리지 않으면 진짜가 될 수 없고 희망이 없습니다.
유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죄가 많은 것은 분명 악이다. 그러나 죄가 많으면서 그것을 인정할 마음이 없는 것은 더 큰 악이다.”
저명한 신학자 찰스 하지도 역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건강하다는 증거가 아닌 것처럼, 무관심하다고 해서 무죄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의 성격이 도덕적으로 얼마나 비열한가에 대해 사람들이 무감각한 것은, 절대로 그들이 선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부패의 결과요, 또한 그들의 부패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성경에 보면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본문 9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성전에 올라가서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눅18:11-12]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울도 바리새인 출신입니다. 그리고 바울도 바리새인 시절에는 이런 상태였습니다. 그것이 빌립보서 3장에 나오는 그의 고백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빌3:5-6]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면 자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왜 이런 잘못된 착각에 사로잡히는 것일까요? 많은 원인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이 겸손하지 않고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잠언 30장에도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30:12-13]
12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13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이것이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자랑하는 사람들의 특성입니다. 잠언의 다른 곳을 보면 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잠9:7-8]
7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8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성경 말씀대로, 거만한 자는 자기가 옳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고 자기의 실상을 보지 못합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징계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도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해주고 싶어도 오히려 관계가 더 나빠질까봐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으뜸 되기를 좋아하거나 자랑하기 좋아하는 교만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교회 안에도 자신에 대해 눈먼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3:17-18]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은혜가 잠시만 나를 떠나도 내가 얼마나 곤고한 자인지, 얼마나 가련한 자인지, 얼마나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인지 우리는 정말 깨닫고 있습니까? 만약 내가 그 사실을 망각하고 멈춰선 상태에 있다면 자신의 영적상태를 심각하게 되돌아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만이 나를 고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중심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눅5:31-32]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은 자신이 의인이라 착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구주가 되어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사가 진단을 하지 않고는 치료를 할 수 없듯이, 환자 역시 자기의 병을 알지 않고는 치료를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찰스 하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음은 죄인들을 위해 설정되었다. 만일 우리가 죄인들이 아니라면 복음은 불필요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들이 죄인들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복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악 됨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사죄를 위해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이 부정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결케 됨을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죄에 대하여 확신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모르는 사람 즉 자기의 잘못을 모르는 사람이 가장 절망적인 사람입니다. 이들은 이사야가 예언하며 경고한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입니다.
[마13:14-15]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런 사람은 자기의 상태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에 있어서도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절대로 이런 사람이 않도록 깨어 기도하며 은혜를 구해야겠습니다.
유명한 기독교 작가 프랜시스 프랜지팬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옛 성품의 부패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크리스천 바리새인들’ 즉 경멸과 위선으로 가득 찬 위선자들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이 열려야 진짜가 될 수 있습니다!
[시139:23-24]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다윗의 이 기도가 우리 모두의 진심어린 기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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