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서)
3. 하나님을 의지할 때 살고 기동하며 존재할 수 있습니다.
행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없이 절대 살 수 없습니다. 너무 1차원적인 예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공기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식사기도를 형식적으로 드릴 때도 있지만, 당장 오늘부터 하나님이 우리에게 먹을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굶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땅이 있으니까 우리가 이걸 딛고 살고, 먹은 게 있으니까 힘을 내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의 바로 앞 절인 사도행전 17장 25절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행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지금 이 땅에서 호흡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이 혜택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토록 주시고도 더욱 주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우리 믿는 자들이 꼭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힘입어서 얻는 실제적인 생명, 실제적인 삶의 목표, 그리고 실제적인 성취가 바로 그것입니다!
숨 쉬고 먹고 살아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누구나 실제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숨은 쉬고 있는데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세상에서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는데 생명이 없이, 바른 목표도 없이, 아무런 유익될 것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 위에 너무나 많습니다.
유명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맡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돈 잘 버는 남자와 결혼해서, 비싼 아파트에서 살며, 본인도 잘 나가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이 모든 것들이 다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저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의 도시들을 여행하며 삶의 의미를 찾기로 결심하며 가정과 직장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작정 떠납니다. 그리고 그 여행을 통해 인간의 행복이 '먹는 것, 기도하는 것, 사랑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면’ 행복해질까요? 이 영화의 주장대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면 정말로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무엇이 빠졌습니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우선은 '내가 살아 움직일 수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은 우리가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는 일에 있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행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그를 힘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힘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힘을 받아야 우리가 온전히 살며, 기동하며,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사는 것은 누구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사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냥 움직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굼벵이도 꿈틀대며 움직입니다. 그러나 진짜 내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확고한 신념과 올바른 목표에서 비롯되는 순수한 열정만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여기에 있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지만 존재감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처럼 비참한 삶이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을 받는 그 누군가가 나를 향하여 반응해줄 때, 그때 우리는 진짜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 유명한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도,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내가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단순히 ‘여기 있는 것’ 아니라 ‘여기 존재하는 것’이 되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힘입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진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신3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그리고 우리에게 참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요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생명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이게 인간이 가진 한계입니다. 살았지만 죽은 것 같은 상태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생명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생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에게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는 것이 진짜 사는 것이 됩니다.
우리에게 온전한 길을 가르치시고, 또 인도하실 분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방향도 없이 목적도 없이 떠도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힘입어 기동하는 삶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한 삶을 받아서 살아갔던 사람 중 대표적인 한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고전9: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인생의 굴레에서 빙글빙글 돌다 끝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 나아가는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바로 하나님을 힘입을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우리가 힘입을 때, 그때야 비로소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냥 그곳에 속한 한 사람으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한 영향을 미치고,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놓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케 하는 일을 우리가 하나님을 힘입을 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냥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고 있구나! 이곳에 당신이라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군요!’라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느낄 수밖에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힘입어 살고, 기동하고, 존재하시기 바랍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더라도, ‘하나님을 힘입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남은 구절들을 마저 살펴보며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28절 하반절부터 29절입니다.
행17:28-29
28下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은 단순한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생이어도 피조물입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 피조물이지만 다른 모든 피조물과 달리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허망한 우상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손재주가 좋아서 금과 은과 돌에다 그럴듯한 조각을 해서 우상들을 만들어 세워놓고 그것들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신인 것처럼 그 앞에서 빌고 운명을 맡기는 어리석은 일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을 여러 차례 지적하셨습니다. 신명기 4장 28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서의 우상숭배에 대해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없이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 멸망하게 되는데 이사야 45장 20절에서는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구원하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니라”고 그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책망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세운 우상이 무슨 복을 주며, 무슨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인간들은 시대를 거듭해서 새로운 우상들을 계속 만들어냅니다.
돈이 우상화되고, 명문대가 우상화되고, 사회적인 성공이 우상화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얻기 위해 미친 듯이 살아가지만,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백화점에 갔는데 예쁘게 꾸며놓은 옥상정원을 발견했습니다. 그 중에 우뚝 솟은 조형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 안에 나선형 계단이 있어 걸어올라갈 수 있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과연 저 위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해진 저는 열심히 그 나선형 계단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끝까지 올라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힘들게 올라갔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가 허무하게 올랐던 그 조형물처럼, 세상의 우상들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 마치 그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한 뭔가가 있는 것 같아 열심히 오르지만 그 끝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좋아보이는 것들에 너무 쉽게 속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지혜의 천박함이요, 명백한 한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한계를 들어서라도 우리로 하나님을 찾게 하십니다.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로서 함께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로 하나님을 힘입어 살고, 기동하며, 존재하게 하십니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변화시켜 가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오직 그를 힘입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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