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6: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우리를 계획하시고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셨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우리의 삶에 늘 동행하시며 풍성한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나 외로운 시간을 보낼 때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을 통해 축복을 베풀어 주시기도 하시고,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예기치 못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뜻하지 않은 은혜로만 우리를 놀라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실 그런 일보다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당연하게 누릴 수 있도록 베푸시는 은혜가 더욱 빈번하고 큽니다. 먹게 하시고 마시게 하시고 걷게 하시고 숨쉬게 하십니다.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십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그런 은혜들이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살아가는 것처럼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듣는 설교말씀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를 계시하시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고, 마음을 표현하시고, 살아계심을 나타내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실 때에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의 본체로서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시고 하나님 자신을 말씀으로 나타내시기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원하십니다. 사모하며 듣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듣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살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는 때때로 기도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깁니다. 어떨 때는 신앙의 의무처럼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다정한 초대이며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을 향한 특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기도는 관계이며 철저하게 인격적인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격체들의 원형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격체입니다. 우리가 인격체로 지음 받은 이유는 하나님이 동등한 인격체 대 인격체로서 서로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고, 영향을 주고 받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은 위대한 주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종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우리와 대화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되고 우리가 한낱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진실로 깨닫게 됩니다. 대화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계획을 알게되고 종이 아니라 친구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씀 자체가 은혜라는 것을 알 때,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얻어내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기도로 변화될 줄 믿습니다. 우리를 다정하게 부르시고 우리의 음성을 기꺼이 듣기 원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가 기쁨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일상에서 하나님의 초대를 느끼실 때가 있습니까? 요즘처럼 비가 자주 오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때에 하나님께 의식을 맞춰보세요. 내게 급한 일이 생기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한 일상 가운데서 모든 감각들을 잠시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해보세요. 시각, 청각, 후각, 심지어 미각과 촉각까지 동원하여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보세요.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 받기 원하고 응답받기 원하지만, 기도의 진정한 가치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에 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이자 저명한 신학자인 C.S.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것을 구하는 간구의 기도는 기도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고백과 회개는 기도의 출발점이고, 찬양은 기도의 성소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느끼며 기뻐하는 것은 기도의 빵이요 포도주다.”
이처럼 기도의 가장 귀한 목적은 겸손한 마음으로 기대감을 품고 예수님의 보혈에 힘입어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고, 궁극적으로는 그분은 가장 귀한 보물로 여겨 기뻐하는 것입니다.
롬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골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위 구절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듯이, 성경은 기도를 '어떤 결과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나 '고고한 신앙을 위한 훈련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기반한 일상적인 삶의 형태"로서 기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기도를 지속적으로 잘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오늘부터는 매일 두 시간 이상씩 기도하고 말겠어’ 하며 두 주먹 불끈쥐며 결단하는 강철 같은 의지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내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반겨주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듣고 싶어하시고 우리와 교제를 나누기 원하신다는 것을 깊이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원하는 마음보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훨씬 더 강렬하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생활을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기 원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기도생활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면 무엇이 원인일까요? 어쩌면 일상에서 기도를 완전히 놓치고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맞닥들였을 때나 성장과 돌파가 필요할 때, 우리는 어떤 혁신적인 해법이나 기가 막힌 비결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대개는, 뭔가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것보다, 한 두 가지 사소하고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꾸준히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점점 좋은 결과를 얻어낼 때가 많습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 자주 나올 수 없어서 마음껏 기도하기 힘들다는 성도님들의 말씀을 종종 듣습니다. 물론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함께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모여서 기도하기 어려운 이런 시기에 오히려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실천해본다면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1) 자신만의 골방을 만드십시오.
예수님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 필요 때문에 기도자리로 나아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마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막6:45-46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예수님은 한번씩 가신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기도하시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으셨습니다.
눅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막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기 전에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셔서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세 차례나 혼자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사역을 시작하실 때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여러분도 규칙적으로 개인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장소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준비되어 있는 장소가 없다면 만들어야 합니다.
꼭 골방처럼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고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충분합니다. 만약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더 집중이 잘 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더 좋습니다.
꼭 어두울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읽거나 생각나는 것을 노트에 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밝은 환경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평소 기도할 장소가 마련되어 있는 사람은 본인의 마음이 기도하기 어려운 상태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골방에 가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 자리에 가는 것만으로 기도의 문이 쉽게 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성경을 먼저 읽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기도라는 대화를 내가 먼저 시작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실 수 있도록 시간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초자연적으로 음성이 들려오기를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빠릅니다.
설령 내가 읽으려고 하는 본문과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기 원하시는 말씀이 과연 일치할까 의문이 든다고 해도 일단 마음 속에서 정한 만큼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조금 읽다가 뭔가 마음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멈추고 기도하는 것이 꼭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진짜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셔도 내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야보아야 합니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기 원하는 마음은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대화를 단절시키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대가라고 불리는 조지 뮬러도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읽고 그 말씀에 근거해 기도를 드리는 것이 기도응답의 비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도록 하는 기도를 하는 그런 기도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3) 찬양과 고백과 감사를 먼저 드리십시오.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한 뒤에는 곧장 마음대로 기도하지 말고 찬양과 고백과 감사를 먼저 드리고 나서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 등 많은 영적지도자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지는 신학자 윌리엄 로우는 기도 생활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고 합니다.
“기도에는 일정한 형식도 있어야 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도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살펴보면 찬양-고백-감사-간구 순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주기도문을 따라서 기도해왔고 그런 기도가 굉장히 유익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알게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죄와 잘못, 연약함을 고백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대해 감사하고,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과 가족과 교회, 그 밖의 일들을 위해 간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4) 가장 솔직한 단어로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꾸 다른 사람들처럼 기도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평소에 욕을 달고 살면서 기도 중에 욕을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힘이 들면 그냥 울음 밖에 나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냥 울어도 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고 싶으면 충분하다고 느낄 때까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힘든지,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힘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씩 차근차근 하나님 앞에 말씀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동안 하나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도 하고 뭔가를 생각나게도 하시고 마음을 변화시켜주기도 하십니다.
시편을 읽어보면 대부분이 그런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편의 저자는 자신의 기도가 수천년 동안 읽혀질 성경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성경에 두신 것은 기도의 모범이 된다고 하나님께서 여기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5) 기도노트를 기록해보십시오.
마치 시편의 저자가 된 것처럼 규칙적으로 또는 정기적으로 한번씩은 정신을 집중해서 신중하게 기도를 글로 기록해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드리고 많은 응답을 받으면서도 금방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글을 쓰면 정확하게 내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하는지 더욱 뚜렷하게 알게 되고 기도생활에 좋은 동기부여가 됩니다. 또 그동안 하나님의 응답하신 내용들을 돌아보는 데에 있어서도 정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 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치 홍해를 가르듯 요단강을 건널 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십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 강 한 가운데서 커다란 돌 열 두 개를 취해 가지고 있다가 요단강을 다 건너고 나면 거기에 그 열 두 돌을 세워 기념비를 세우고 훗날에 후손들이 이게 무슨 돌이냐 물으면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홍해를 건넜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것보다 훨씬 놀라운 일들을 겪고도 그 은혜를 잊어버려 하나님을 의심하고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너게 하실 때에는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잘 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분이신지,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셨는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작은 음성도 귀하게 여기고 사소한 변화들도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우리 삶에 새긴다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생활에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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