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서)
3. 우리도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함께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눅10:38-42]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할 때 불평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르다는 많은 일로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손님들을 대접하는 일로 바빴습니다.
‘예수님을 초대해놓고 식사를 잘 준비하지 못하면 어쩌지? 사람들이 우리 집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귀한 손님을 억지로 모셔놓고 푸대접한다고 흉이라도 보면 어떨까?’
이런 걱정들이 마르다를 염려하게 하고 걱정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분주하게 일을 하다 보니 또 염려와 걱정은 이런 생각들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왜 나만 이렇게 일하고 있지? 내 동생 마리아는 어쩜 저렇게 가만히 앉아 있을까? 예수님은 왜 마리아에게 말씀하셔서 나를 도와주라고 하지 않으실까? 예수님이 과연 내 생각은 하고 계시는 걸까?’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마저 들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성품에 대해서까지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때론 이런 마르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뭔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셨다고 믿는 어떤 일을 위해, 또 생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많은 일들을 하면서, ‘나는 왜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지? 왜 나만 이런 고생을 하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이런 고생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주님이 불공평하신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온 맘을 다해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발치 앉아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분주하게 허둥대던 언니 마르다와는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며 섬길지 스스로 선택해서 그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마리아의 모습은 예수님께 향유옥합을 깨뜨려 드릴 때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열심히 모은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려야겠다는 감동이 왔을 때, 왜 나만 이렇게 희생해서 섬겨야 하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비싼 향유를 무엇 때문에 이토록 허비하느냐고 핀잔을 주는 가운데서도, 그녀는 주도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했고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일을 통해 사랑의 기쁨을 충만하게 누렸습니다.
만약에 마르다도 이렇게 예수님을 섬겼더라면 마르다의 마음에 과연 불평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요? 분주한 섬김이지만 오직 예수님을 위해 기쁘고 즐겁게 섬겼을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해 예수님을 대접한 여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자신은 전혀 원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사명을 주셔서 어쩔 수 없이 목회를 하고 있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합니다. 물론 목회는 부르심 없이, 사명감 없이 감당하기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정말 목회를 감당할 마음이 전혀 없는데 하나님이 억지로 떠맡기시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청년들은 결혼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해 올 때가 많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은 질문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정해주신 배우자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요?’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해주시기는 하지만, 그 사람을 평생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일은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자신의 배우자를 하나님이 정해놓으셨다고 믿고 결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배우자라서 결혼했는데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사람과 결혼하면 저절로 행복해질 줄 알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과 만났다고 해서 저절로 행복해지는 결혼생활 같은 것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기로 선택하시고 기꺼이 희생하기로 선택하셨던 것처럼, 본인이 배우자를 사랑하기로 선택하고 기꺼이 희생하기로 선택할 때 그 선택들이 모여서 행복한 결혼생활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본인이 사랑하기로 선택한 것에 대해 본인이 책임을 지는, 책임감 있는 사랑을 해야 진짜 사랑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목회의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사명에 헌신하겠노라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몫입니다. 사도 바울은 단순히 받은 사명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자의적인 헌신을 할 때 주님으로부터 상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고전9:16-17]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사도 베드로도 이것이 사역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벧전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단순히 사명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것이 걸려 있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원함으로, 기꺼이” 사명감당 해야할 줄 믿습니다. 그럴 때 하늘로부터 오는 큰 상을 약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벧전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모든 사역에 무거운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책임감을 뛰어넘어 자원하는 심령으로 주님의 일들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럴 때 기쁨이 있고, 그럴 때 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열매가 있고, 그럴 때 정말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 읽은 누가복음 10장 41절과 42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눅10:41-42, 현대인의성경]
41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그러나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으니 아무에게도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선택한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하여 오늘 여러분이 선택한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남의 눈치 따위 신경 쓰지 말고, 누군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니까 하는 그런 것 말고, 여러분은 스스로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기로 선택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여호수아 24장 14절에서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는 삶"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삶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기리라는 본인의 확고한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니 내가 감당하겠다!’라는 의지가 나타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장 22절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결단을 이렇게 확인시킵니다.
[수24: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하더라
‘여러분은 이제 다른 사람이 증인 되어줄 필요 없는, 본인의 확고한 선택으로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겠다고 결단했다! 이제 이 선택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이 명백한 사실을 되새겨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던 다윗에게도 그가 평생을 두고 추구하기로 선택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시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윗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을 사는 것, 그 '한 가지'를 구하겠노라고 고백합니다. 언뜻 듣기에는 신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고백처럼 들릴 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백은 율법이나 어떤 것에 강요로 인한 고백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가식적으로 내뱉은 말이 아닙니다. 스스로 본인의 삶을 걸고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를 직접 정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이렇게 살아갈 것이며, 그것은 그 누구도 꺾지 못할 본인의 주도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랑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100세 얻은 귀한 아들을 바치려고 했고, 모세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우상의 제물 먹는 것을 거절했고,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감당하기로 선택했습니다. 한때 예수님을 핍박하는 일에 가장 앞장섰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기 원한다고 고백했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제자 베드로는 순교 당할 때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바로 달리는 것이 송구스럽다며 거꾸로 달릴 것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 의문을 던질만한 일을 담대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단순한 순종 그 이상을 하려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이냐 불가능한 일이냐, 그것은 그들에게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그들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이런 진실한 사랑, 성숙한 사랑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신앙 때문에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와도,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한 것은 바로 ‘저’이기 때문에 저는 이 모든 것을 기쁨으로 감당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저만이 드릴 수 있는 특별한 사랑을 받으소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마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넉넉한 인심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따라 살 때 우리 안에 어떤 기쁨이 생겨날지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종종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잘하면서 왜 예수님께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딱 그것만큼, 딱 그것만큼만 하려고 할까요?
‘예수님! 5리를 같이 걷기를 원하세요? 제가 10리 같이 걸어 드릴게요! 아니, 20리, 30리, 끝까지 같이 걸어갈게요!’
이렇게 고백한다면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 고백하는 나의 인생도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마르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가지 분주한 많은 것들이 아니라 우리가 진실한 사랑으로 행하는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 것입니까? 주님을 어떻게 사랑할지, 영혼들을 어떻게 사랑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쁨이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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