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나눔

그리스도의 향기(1)(고후2:14-17)

아침묵상 2021. 3. 2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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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2장 14-17절]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땀 냄새, 발 냄새. 이런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신 사람들은 향기를 좋아합니다.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냄새. 꽃향기라든지 과일에서 나는 향기 같은 것을 맡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에게서 나는 향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때 우리는 ‘향기’라는 단어에서 섬유유연제를 넣어 세탁한 뽀송뽀송 분홍색 스웨터 같은 곳에서 날 것 같은 좋은 냄새 비슷한 것을 쉽게 떠올립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향기’가 되기 위해 봉사도 많이 하고, 구제도 많이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초대 교회 때 그러했던 것처럼 세상 사람들마저도 칭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의 상황을 볼 때에 정말 그렇게 효과를 거두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늘 의문입니다. 통계적으로도 다른 종교에 비해 기독교가 가장 봉사도 열심히 하고 사회를 위한 기부 활동에도 가장 열심이지만, 도리어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 등을 돌렸고 기독교 인구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이 땅의 많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향기에 대해 오해하고 있고, 그로 인해 성경에서 말하는 진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많이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무엇보다도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왜 전도하지 않는가 물어보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대답하기를 사람들과 마찰을 빚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면서 복음을 전할 만한 확실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옆에서 내가 잠잠히 잘 하다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알게 되는 때가 오지 않겠느냐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예수님을 더욱 닮은 삶을 살아간다면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고 저절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오해입니다. ‘향기’라고 하니까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풍겨나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을 우리의 성품을 두고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에 보면 14절에 우리에게서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난다.’라고 사도 바울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느냐?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보며 “예수쟁이 냄새가 난다.”라고 얘기할 만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했고 또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고전2:15-16]

우리는 구원 받은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이 냄새가 그저 그리스도인의 예수님 닮은 인격과 성품으로 이해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닮은 좋은 성품이 어떻게 악취처럼 여겨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냄새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생명의 냄새와 사망의 냄새가 함께 나게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장면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거 봐. 하나님은 구원받기로 선택받은 사람들의 마음은 여시지만,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은 강퍅하게 하시는 분이셔.” 그러나 그들은 모든 영혼들을 향해 사랑을 쏟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 걸까요?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녹아지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딱딱하게 굳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사람들은 이 두 부류로 정확하게 나뉩니다. 하나님 앞에 녹아지는 사람과 강퍅해지는 사람. 하나님은 일부러 사람의 마음을 닫는 분도 아니고, 그래서 멸망가운데로 떨어지도록 일부러 내버려두시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그 차이점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 곧 복음이 선포될 때에도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분 좋은 향기처럼 받아드릴 것이고, 어떤 사람은 시궁창에서 나는 악취처럼 여기며 거절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전파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고 당연한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일어나는 반대와 핍박을 그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인격이 결여되어서 일어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뭔가 복음전도 전략이 고급스럽지 못해서 일어나는 핍박이 아니었습니다.

 

복음 자체가 선과 악, 환대와 핍박을 나눠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의 기분을 맞춰가며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할 때 지혜 없이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하기 위해 유대인 앞에서는 유대인처럼 되었고, 이방인 앞에서는 이방인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는 분명히 어느 정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지혜인지, 아니면 마찰이 두려워 피해가려는 얄팍한 내 지혜인지 반드시 점검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에 좀 무식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소위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더 복음을 전하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히려 앞뒤 따지지 않고 일단 이야기하고 보는 그런 사람들이 훌륭한 복음 전도자로서의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뽑을 때 고학력의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을 뽑지 않으셨습니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갈릴리 어부들과 촌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조차도 자신이 이제껏 쌓아왔던 자신의 지혜를 분뇨처럼 여긴 후에야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능력과 은사를 받고 나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지금 내게 아무런 능력이 없는데 애써 복음을 전한들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경공부를 어느 정도하고 신학공부를 어느 정도하고 복음을 전하겠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말 주변이 없어서 복음을 잘 설명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핑계가 되지 못합니다.

 

모세가 그 모든 핑계로 하나님 앞에 직접 서 봤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자유케 할 계획을 이야기하시자 모세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제가 직접 하나님을 만났을 거라고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제게 표적을 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에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고 손이 문둥병 걸려 하얗게 변했다고 돌아오는 표적을 주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또 무엇이라 합니까?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모세의 핑계에 하나님은 또 참으시며 이야기하십니다.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 할 말을 가르치리라.”

그러자 모세가 또 못 가겠다며 말합니다.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자유케 되기를 그토록 바라던 모세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광야로 쫒겨나온 모세는 40년 동안 양을 치면서도 못 다 이룬 자신의 꿈을 항상 아쉬워했을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 마음을 쏟던 모세를 하나님은 항상 지켜보시다가 드디어 그 일을 이루어주시기 위해 모세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내게는 능력이 없어서 못 갑니다. 내 입술에 지혜가 없어서 못 갑니다. 나는 이 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주세요."

 

여기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오랫동안 힘써 기도하신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이면 여러분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누구를 보낼 것 같습니까? 그 가족들을 가장 사랑하고 중심으로 그들의 구원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여러분을 보내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가족들에게 누군가가 와서 나 대신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예수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이제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내가 온유하고 겸손하여 불신 가족들을 오래 참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오래 참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서로 기분 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복음을 숨기는 것은 내가 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피하고 있을 뿐입니다.

 

[고전1:22-24]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사도 바울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에게 표적을 충분하게 보여줌으로 전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뛰어난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 지혜로운 말로 설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사역의 가장 핵심에는 놀라운 치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감탄할만한 강해설교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기적을 행하는 강력한 은사가 내게 있다고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훌륭한 언변과 수려한 성경지식이 있다고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단 한 가지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표적과 기사를 보여준다 해도 그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전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유창한 말로 사람의 마음을 열고 설득시켜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들에게 사랑과 애정을 붓고, 돌봐주고 섬겨주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한다고 한들 그들의 모든 죄와 고통을 십자가에서 대신 지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친절과 배려’라는 이유로 복음을 직설적으로 전하는 것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만한 좋은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얘기하지 마십시오. 복음은 “괜찮은 보험이 있는데 하나 들어봐라.”는 식으로 가볍게 전할 것이 절대 아닙니다.

 

복음을 존귀하게 여기십시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라고 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복음을 담대히 전함으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편에서 계속)

 

 

 

그리스도의 향기(2)(고후2:14-17)

그리스도의 향기(1)(고후2:14-17) [고린도후서 2장 14-17절]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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