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1장 18-21절
18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19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20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21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의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녀를 양육하는 일에 얼마나 큰 가치를 두시는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신명기를 읽어보면 모세가 임종 직전에 가나안땅을 직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선포한 설교가 쓰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러 번 반복해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칠 것을 명령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6:6-7]
6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32:46-47]
46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47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아이에게 있어 부모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욱 강조하여 우리가 이것을 잊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녀를 맡기신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그분은 어떤 분이신지, 어떤 성품을 갖고 계시는지 배우고, 어떻게 예배드려야 하는지,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또 그분께서 이 아이에게 두신 계획이 무엇이며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일, 그 귀한 일을 다른 사람이 아닌 부모에게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하나님이 부모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이 중대한 사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또한 성실히 이 사명을 감당하기 원하십니다.
물론 자녀에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가르치는 일에 교회가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맡기신 일이며,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부모에게서 그 사명을 물리신 적은 한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와 보내는 시간보다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독서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물론 피치 못할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하는 일에 대해 소홀하기 쉬운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는 영어학원에서 배우고, 수학은 수학학원에서 배우듯이 신앙은 교회에서 배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매주일 열심히 주일학교 보내고, 여름수련회 겨울수련회 챙겨서 보내는 것으로 부모로서의 사명을 다했다고 착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쁜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저 또한 충분하다고 생각될 만큼 아이들과 시간을 자주 보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주님이 저에게 맡겨주신 일들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님들을 섬기는 것도 저의 사명이며, 자녀들을 섬기는 것도 저의 사명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될 때면 균형을 잘 잡기 위해 주님의 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저희 첫째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서 저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아빠는 왜 자꾸 집에 왔다가 금방 다시 교회 가는 거예요? 지금 또 가요? 왜요?”
저는 대답하기가 참 조심스러웠습니다. 자칫 아이가 교회에 대해 생각할 때, 교회가 항상 아빠를 자기한테서 떼어놓는 부정적인 장소로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아이의 입장에서 잘 설명해보려고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주님의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 교육에 있어 어떻게 주님의 지혜를 구해야할지, 자녀와의 어떤 문제 앞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혼란스러워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왜 하필 나에게 이 아이를 맡기셨는지 한탄하기도 하고, 혹시 나로 인하여 이 자녀가 불행해질까 걱정하며 무거운 마음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저도 자녀가 없을 때는 몰랐는데, 아이 둘을 조금 키워보니 이 아이들이 제 인생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잘 되는 것보다 이 아이들이 잘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 이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느낌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마음을 온통 채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본인이 성공해도 자녀가 불행한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부모는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며,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의 자녀들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좋은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직 자녀가 없거나, 아니면 이미 자녀가 장성하여 양육의 사명을 다 이루었노라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부모 못지 않게 아이들을 양육하고 계신 조부모님들도 많으시고, 교사로 섬기시는 분들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 계시든지 마음을 열고 읽으실 때,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함께 계시는 성령님께서 여러분 각자의 상황에 맞게 꼭 필요한 말씀들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1. 부모는 어느 위치에 서야하는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라면 어느 일이든지, 그 일을 성공적으로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동의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대할 때 이것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이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아이들을 섬길 때 여전히 나 중심에서 섬길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물론 부모라서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고 희생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착각합니다.
‘내가 내 자녀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설마 나 중심적일 수 있겠어?’
그러나 우리가 자녀를 키우면서 겪는 많은 문제들 중 상당수는 부모가 자기 중심적으로 자녀를 대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잠재의식 속에 깊이 자리해 양육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이 아이들은 내 자녀야. 그러니까 내 방식대로 키우는 게 당연해.”
물론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는 부모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부모들이 이러한 관점으로 아이를 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과 계획에서 아주 살짝살짝씩 어긋나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때론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 양육방식을 취한다고 해서 두드러지는 문제가 바로 당장 생기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테두리를 벗어나게 만드는 아주 미묘한 생각과 동기의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변화는 우리가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매우 사소한 일상에서 벌어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전혀 의식하지도 못한 채 넘어가기도 합니다.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을 모두 동감하시겠지만 양육은 대부분 정신 없이 분주하고 산만한 일상 속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부모는 빠르게 흘러가는 일정들을 감당하면서, 아이의 상태를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어떤 문제의 원인을 집중해서 들여다볼 겨를도 없이 양육에 관한 많은 결정을 내려야하는 순간들이 쉬지 않고 다가옵니다. 그리고 거의 감각적으로 판단하여 그것을 실행하게 됩니다. 이런 순간이 반복되고 반복되어서 결국은 어느 한 부모의 양육태도로 서서히 굳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인간은 원래 죄인인지라,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마음 깊은 곳에 부모의 욕심과 보상심리가 자리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너는 나중에 꼭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 그러려면 너는 이런 아이가 되어야 하고, 이런 것을 지금 배워야 하고, 이런 것 정도는 이미 잘 해내고 있어야 해.’하면서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미래를 자녀가 쟁취하기 바라고, 그 노고에 대한 보상을 무의식중에 기대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 생각이 완전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세상사람들은 ‘부모니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녀를 허락하신 이유가 아니기 때문에 자녀에게 자신의 자아실현욕구를 투영시키는 것에는 근본적으로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초에 의도하신 바람직한 양육의 출발은 “자녀는 부모인 나에게 속한 자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겸손한 고백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이들은 그를 지으신 창조주의 것입니다. 즉 우리의 모든 자녀들은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녀를 맡기실 때, 우리로 하여금 그 아이의 주인 행세를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못다한 자아의 실현을 강요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성장하도록 잘 도와주라고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죄의 본성은 우리가 자녀의 주인이라고 속이려고 합니다. 기다리지 말고 재촉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보다 야단치고 때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속삭입니다. 우리 자신의 허물은 그대로 두고, 아이의 죄와 약점과 실패를 더 빨리 찾아내게 만듭니다. 아이의 귀에다 대고 잔소리하기는 좋아하면서 아이들이 말하려고 할 때는 “시끄러!”라고 외치도록 만듭니다.
어쩌면 여러분 중에는 “저는 아이들을 소유물로 여기거나, 그렇게 대하지 않았어요. 그저 아이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싶었을 뿐이에요. 내가 얼마나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줄 아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라 자신의 소유로 붙잡고 있는 ‘주인으로서의 부모들의 특징'들을 세 가지 나열해보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본인에게 해당하는 것은 없는지 살펴보시기 원합니다.
첫째로, 주인으로서의 부모는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 행복을 자녀에게서 찾으려 합니다.
이런 부모들은 자녀를 자신의 명예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자녀를 자랑하기 좋아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 합니다.
그래서 이런 부모의 자녀들은 ‘잘난 부모님의 체면’을 지켜내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부담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부모의 명예를 훼손하는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 부모는 그 일을 자녀의 의도적인 반항으로 인식하고 쉽게 화를 내며, 또한 자녀로부터 필요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이런 부모의 자녀는 항상 부모의 자랑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모가 상처받기 때문에, 본인이 성장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몹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로, 주인으로서의 부모는 자신이 자녀를 대단한 무언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원하는 어떤 비전을 세우고, 자녀를 거기에 맞는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권력과 돈, 시간과 에너지를 맘껏 쏟아붓습니다.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부모와 그 부담감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자녀들을 상담해보면, 그 부모들이 대체적으로 자신이 꿈꾸는 비전대로 아이들을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과 전략을 본인이 다 가지고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주인으로서의 부모는 어떤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서 아이가 이 기준에 도달해야만 자신의 양육이 성공한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성적을 얼마나 받아오고, 어떤 대학에 합격하고, 어떤 대회에서의 입상하고, 어떤 직장에 취직하는가 하는 것들이 부모가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녀가 자신의 바람대로 어느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경우 스스로를 자책하는 경향을 띄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자녀를 맡기실 때에 부모의 자존감을 북돋우기 위해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의 삶에는 그들의 주인되시며, 진짜 부모이신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소명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그저 하나님께 쓰임받는 도구이며 하나님만이 우리 자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결과나 지표를 가지고 자녀를 판단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닮은 온유와 겸손으로 그들을 기다려주고 기대해주고 기도해주는 일을 조용히 감당하는 일, 그것이 부모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양육해보면 이렇게 작고 귀여운 아이들도 결국 죄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천진난만한 미소로 웃고 있어도 가만히 두면 지옥에 가겠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런 죄인을 양육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때도 있고, 때로는 창피한 상황이 오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것 때문에 곤란해할 필요도, 절망감을 느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중 어떤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때로는 실수하고, 반복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하루하루 주어진 은혜로 겨우겨우 감당해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 아니겠습니까?
내 자녀의 주인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아는 부모는 자녀가 나중에 경건한 모습으로 온전히 잘 성장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절대 자신의 면류관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저 부모로서 옆을 지켰을 뿐 하나님이 다 하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편에서 계속)
'설교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모의 사명(3)(신11:18-21) (0) | 2021.02.16 |
---|---|
부모의 사명(2)(신11:18-21) (0) | 2021.02.16 |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는(고후6:1-10) (0) | 2021.02.15 |
경건의 능력(딤전4:7-8) (0) | 2021.02.14 |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말1:1-10) (1) | 2021.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