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나눔

경건의 능력(딤전4:7-8)

by 아침묵상 2021. 2. 14.
반응형

 

[디모데전서 4:7-8]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많은 교회들이, 목사들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고 오직 믿음을 강조하지만 정작 믿음이 무엇인지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경건’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오해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로마의 화가 아렐리우스는 자신의 작품에 여자를 그릴 때마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들의 모습이나 생김새를 따라 인물을 그려넣었다고 합니다.

 

마치 이 화가처럼, 사람들은 각자 자기 자신의 열정이나 공상에 따라 경건을 묘사합니다. 금식에 몰두해 있는 사람은 비록 자기의 마음이 증오로 가득 차 있다 해도 금식만 하면 자기가 경건하다고 생각합니다. 술 마시지 않고 담배를 피지 않는 것이 경건이라고 믿는 사람은 자신의 입으로 모든 중상모략과 험담을 하면서도 자신은 경건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매일 기도를 많이 하기 때문에 경건하다고 믿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들을 자주 하기 때문에 스스로 경건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약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이렇게 자신이 경건하다고 믿는 사람들 중 부지기수가 경건에 대해 착각하고 있고, 참된 경건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에는 경건이라는 단어가 총 예순일곱 번 나옵니다.

히브리어로는 ‘하시드חסיד’, 헬라어로는 ‘유세베이아Ευσέβια’로 표현되는 이 경건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대한 적절한 태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초대교회가 세워진 헬레니즘 문화에서는 ‘예배’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은 경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약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 사도는 참된 경건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은혜’라고 부릅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게 하고 겸손케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외’라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 그대로 행하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긍휼’이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경건’은 어떤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17세기의 성직자 프랜시스 드 살레는 경건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주의 깊고 빈번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하도록 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경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새들 중에서 타조는 아예 날지를 못합니다. 암탉은 서투른 모습으로 날되, 그리 높이 날지는 못하고 가끔 한 번씩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나 매 같은 새들은 다른 새들보다 더 높이, 그리고 아주 빠르고 신속하게 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결코 높이 날지 못하고 여기 이 땅 위에서, 이 땅에 있는 것만을 위해서 한평생을 살아갑니다. 아직까지 경건에 이르지 못한 선한 사람들은 그들의 선행으로 하나님을 향해 날아오르지만 가끔씩, 천천히, 서투르게 날 수밖에 없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 더욱 자주, 신속하게, 높이 날아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건이란 영적인 민첩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민첩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신속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온전히 지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사랑의 기능이듯이, 그것들을 더 빠르고 더 부지런히 지킬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경건의 능력인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 하고, 경건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 외에 사랑의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민첩함과 뜨거운 열심히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경건의 능력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기초가 됩니다. 그리고 경건의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들을 신속하고 적극적이고 충실하게 지키도록 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가능한 한 많은 선행들을 애착을 가지고 빠르게 해낼 수 있게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들은 물론이고,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마음에 감동되는 일이라면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경건의 역할입니다.

 

저는 군대에 있을 때 발목을 심하게 다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발에 깁스를 한 채로 반 년 동안 살았습니다. 얼마나 답답한지요. 특히 여름 불볕더위가 막 시작할 때 수술을 하고 깁스를 해서 그 해 겨울이 되어서야 풀었습니다. 이제 다 나았다고 맘껏 뛰어다니려고 했는데, 조금만 걸어도 발바닥에서 불이 나는 것 같고 너무 아팠습니다. 수술한 곳은 나았지만 오랫동안 안 쓴 근육과 관절들이 회복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프다가 방금 막 회복된 사람은 꼭 가야만 하는 만큼만 걷습니다. 그것도 천천히 아주 힘들게 걷습니다. 마찬가지로 경건의 능력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만큼만 걸으려고 합니다. 그것도 매우 천천히 힘들게 걷습니다.

 

 

 

 

반면, 경건의 능력에 이르게 되면 마치 건강한 사람처럼 걸을 뿐만 아니라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의 도를 행하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성령의 음성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과 경건을 불과 화염으로 비유해서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랑을 영적인 불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타올라 화염이 될 때 그것을 경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불에 불꽃을 더한 것이 경건인데, 그 불꽃으로 말미암아 사랑이 신속하게 되고, 적극적이 되고, 부지런하게 되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음성을 따라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려고 때 가나안을 먼저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민13:33]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할 수만 있으면 거룩한 경건을 왜곡시키려고 합니다. 세상은 경건한 사람들의 모습을 불만스럽고 침울하고 성난 표정으로 묘사하며, 경건한 삶은 너무 고요해서 무미건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이 약속의 땅이 좋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소산이 달고 맛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경건한 삶은 달고 복되며, 사랑스러운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십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경건하다고 말합니까? 기도하는 사람, 금식하는 사람, 상처를 잘 참고 견디는 사람, 병자들을 보살펴 주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사람, 철야를 잘하는 사람, 분노를 억제하는 사람, 감정을 조절하는 사람,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 본질적으로 그 행동 자체가 엄격한 것들을 행하는 사람을 가리켜 경건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행동들만 바라볼 뿐이지 그런 행동을 하는 그 사람 안에 있는 내적인 경건까지는 발견하지는 못합니다.

 

 

 

 

 

프랜시스 드 살레의 “경건한 삶으로의 안내”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백리향이란 꽃 속에서 일하는 벌들을 보라. 그 꽃 속에는 매우 쓴 즙이 들어 있는데 벌들이 그것을 빨아들여서 꿀로 만든다. 벌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 세속의 사람들이여! 경건한 사람들이 금욕적인 삶을 통해 쓰디쓴 맛을 경험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통해 그 쓴 것들을 달콤하고 맛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순교자들은 경건한 사람들이었기에 불이나화염이나 바퀴나 칼이 그들에게는 꽃과 같고 향기와 같았다. 경건으로 인해 가장 잔인한 고문과 심지어 죽음까지도 그토록 달콤하게 바꿀 수 있다면, 덕스런 행동을 위해서는 얼마나 더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경건은 달콤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드 살레는 같은 책에서 경건에 대해 이렇게 또 표현했습니다.

 

"경건은 사랑의 완성이기 때문에 기쁨 중의 기쁨이요, 선행 중의 여왕이다. 사랑을 우유라고 한다면, 경건은 그것의 크림이다. 사랑이 식물이라면, 경건은 그 꽃이다. 사랑이 보석이라면, 경건은 그 광채이다. 사랑이 값진 향유라면, 경건은 그것의 아름다운 냄새이다. 그렇다. 참으로 경건은 인간을 위로하고 천사를 즐겁게 하는 달콤한 냄새이다."

 

[딤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3:11下]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욥13:16]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경건은 그리스도인이 어쩔 수 없이 지고 가야하는 십자가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시키기 원하시고 회복시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경건은 어떤 외적인 모양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하고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 안에 경건의 능력이 회복되게 하소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