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서)
부모의 사명(1)(신11:18-21)
신명기 11장 18-21절 18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19 또 그것을 너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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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하나님이 우리 자녀의 주인이라고 해서 부모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신11:18-20]
18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19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20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하나님은 부모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질 것.
둘째, 자녀에게 그 말씀을 수시로 가르칠 것.
[딤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부모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성경으로 전혀 다른 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점을 쉽게 간과합니다. 사복음서를 읽어보아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같은 성경을 가지고 문자적인 율법을 가르쳤고, 예수님은 같은 성경을 가지고서 율법의 정신, 곧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 예수님처럼 가르치지 않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가르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십계명 중 제 5계명을 가르칠 때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까지는 잘 가르치는데 그 이후에 있는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슷한 말씀으로 에베소서 6장의 말씀을 가르칠 때도
[엡6:1-4]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많은 부모들이 이 네 구절 중에 제일 첫 절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만 강조하여 가르치고, 이후 구절에 대해 잘 설명하지 않습니다. 특히, 부모에게 불리한 구절인 4절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하는 내용은 아이와 함께 묵상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골로새서 3장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골3:20-21]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쉬운성경 역: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통해서 주님이 그들을 얼마나 기뻐하실지 충분히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주님이 우리 부모들에 대해 어떤 염려를 갖고 계신지에 대해 자녀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부모들이 얼마나 자녀에게 화를 낼지 이미 잘 알고 계셨습니다!!) 부모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자칫 마음이 상할까 생각해주시는 하나님에 대해 잘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 위에 훨씬 더 많은 ‘부모의 율법’을 더합니다.
“식탁에서 장난치면 안 돼.”
“밥투정하면 안 돼.”
“거실에서 뛰어다니면 안 돼.”
“물건 함부로 만지면 안 돼.”
“게임하면 안 돼.”
“TV 많이 보면 안 돼.”
“밤 늦게 돌아다니면 안 돼.”
“이성친구 함부로 만나면 안 돼.”
“자꾸 말대꾸하면 안 돼.”
물론 이 모든 ‘안 돼’들이 정말 필요한 ‘안 돼’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자녀들에게는 가르침이 필요하고 그런 충고들이 많은 것들에서 자녀들을 보호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 ‘안 돼’를 그저 부모의 율법으로 짐지울 때 예수님은 그 부모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실지도 모릅니다.
[눅11: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사랑하는 부모님 여러분, 여러분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최근에 여러분이 자녀에게 불가피하게 화를 낼 수 밖에 없었던 적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정말로 가능하면 화를 안 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언성이 올라갔던 적을 잠잠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왜 화를 냈습니까? 왜 언성을 높였습니까? 그것이 내 자녀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겨서였습니까? 아니면, 내가 세워준 율법을 어겨서였습니까?
부끄럽게도 저 또한 이 물음 앞에서 자신있게 대답하기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가 원하는 행동양식 안에서만 자녀가 살아가면 별일 없는 것처럼 여길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자녀의 어떤 행동의 동기가 설령 하나님의 마음과 다르다 할지라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만 하지 않으면, 나에게 짜증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너무 너그럽게 지나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자녀가 내가 자녀에게 부여한 율법을 무시하면 금방 기분이 나쁩니다. 바로 한 마디 해줘야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다시 한번 또 그렇게 하면 어떤 제재가 가해질지 엄포를 잔뜩 놓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우리는 율법주의 이단에 대해서 배웁니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나 자녀를 가르칠 때에는 율법주의 이단이 되어서 가르칩니다. 우리 교회가 그토록 율법주의 이단이라는 누명을 쓰고 고생당했는데, 자녀에게는 “네가 내 말 듣지 않으면 끝장이야. 이거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너는 평생 불행해지고 말거야.”하고 으름장을 놓고 마는 것입니다.
물론 자녀에겐 규율이 필요하고 그들의 행동을 바로잡아 줄 규칙이 주어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만일 율법을 알고 수행하는 것이 전부라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자녀들의 마음을 정결케하고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이것을 반드시 이해하셔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율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할 수는 있지만 죄에서 구원할 어떤 능력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많은 율법을 인간에게 부여한다해도 그것으로 인해 인간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시잠깐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다가 다시 돌아갑니다. 율법은 마음과 뜻을 새롭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신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꼭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리고 귀여운 자녀들이 자라서 어떤 시점에 이르면, 자신이 왜 규칙을 지켜야 하는지, 왜 특정 신념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도대체 누가 자신을 부모에게 맡긴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들이 적절한 대답을 해주지 않고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 해!” 혹은 “내 말 안 들으면 혼날 줄 알아!”라고 말합니다. 부모를 두려워하는 나이에는 그런 말들이 먹히겠지만 머지않아서 그런 말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을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어떤 규칙에 의문을 제기할 때는 여러분은 여러분이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침착하게 자녀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헷갈려할 때,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위협하는 대신에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로운 분이신지, 그리고 이러한 규칙을 주실 때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셨을지를 함께 묵상하며 나누는 것입니다.
아이가 말씀 앞에서 어떻게 행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할 때는 “네가 자칫 잘못 선택해서 행동하면 하나님이 너를 곤란하게 하실지도 몰라.”라고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자되시고 인도자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고 격려하며, 지혜와 힘을 더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 느긋하게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여러분, 자녀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돕기 원하시고, 필요한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를 위해 능력을 행하시는 여호와라는 사실을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계시는 단지 나 한사람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변화시키시고, 은혜를 부어주셨기 때문에 내가 부모로서 내 자녀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자녀에게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말해줄 기회들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새하얀 눈이 내릴 때에도, 함께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때에도, TV에서 물 속에 사는 커다란 상어를 볼 때에도, 다같이 식탁에 모여 맛있는 요리를 먹을 때도, 매일매일 해가 지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뜨는 것을 볼 때에도 우리는 자녀와 함께 ‘선하고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 말씀이 증거하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을 이야기할 기회가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세계를 바라보면 그것을 만드신 ‘창조자 하나님’을 생각해야하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자꾸 잊고만 살아갑니다.
자녀와 함께 성경을 자주 읽으십시오! 그리고 아이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인내를 가지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아이 스스로 하나님을 직접 발견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신의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주 고백하고 증거하는 것은 아이에게 좋은 가이드라인이 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있어 살아있는 역사와 같다는 말이 있듯이 오늘도 부모 자신의 삶에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자녀에게 간증하는 것을 통하여 자녀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눔은 단지 어린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자란 자녀들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릴 때, 선하고 좋으신 주님께서 우리 자녀 위에 예비해두신 사명을 위해 준비할 수 있도록 지혜주시고, 능력주시고, 격려해주실 줄 믿습니다!
(3편에서 계속)
부모의 사명(3)(신11: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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